한국남자배우

강동원(배우)에 대해알아보자

SNFZOO 2023. 5. 12. 21:45

대한민국의 모델 출신 배우.

 

강동원은 매력적인 외모, 뛰어난 연기력, 다재다능한 역할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배우입니다. 그는 1981년 1월 18일 대한민국 부산에서 태어나 2003년에 연기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한국 연예계에서 두드러진 인물이었으며 그의 공연은 그에게 여러 상과 지명을 받았습니다. .


강동원이 동시대 배우들과 다른 점 중 하나는 폭넓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소화해내는 능력이다. 액션으로 가득 찬 역할부터 로맨틱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든 것을 해냈으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들과 함께 일했으며 평론가와 팬들 모두에게 그의 작품에 대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강동원의 필모그래피에는 최근 가장 성공한 한국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다. 2005년에 그는 액션 스릴러 "Duelist"에 출연하여 상업적이고 비판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어 2006년 "성대한 목요일"에서 사형수 역을 맡아 가슴 아픈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2009년에는 흥행작인 '밀회'에 출연해 한국영화대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강동원은 여러 성공적인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2016년 전 세계적으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좀비 아포칼립스 스릴러 '부산행'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후 2017년 범죄액션 드라마 '범죄도시'에 출연해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중 하나가 됐다.


인상적인 연기력 외에도 강동원은 자선활동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네팔 지진 피해자 돕기 캠페인에 모델료 전액을 기부했다. 그는 또한 여러 자선 행사에 참여했으며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했습니다.

 

강동원 데뷔전 모델 시절

중학교 때는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 별명은 '오골계'였다고 한다. # 어렸을 적엔 평범한 외모였고,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해 까맣게 그을려 그런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위의 졸업사진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는 까무잡잡하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아이의 모습이다. 지금의 외모로 자리잡힌 건 고등학교 시절로 보인다. 위 사진 중 잘못된 정보가 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나온 사진은 사실 대학 졸업 사진이다. #

입학고사에서 200점 만점에 192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거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좋아하던 축구를 부모에 의해 포기하게 된 것이 한이 됐는지 고등학교 입학 후 축구부에 합류할 기회를 잡자 제대로 하면서 학업에 소홀했다고 한다. 이 당시 반항심에 시험지를 거의 백지로 내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전교 200명 중 198등을 한 적도 있다고. 고3 때,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기계공학과에 특차로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 쪽에 재능을 보였고, 수와 셈에 능해 당연스럽게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강동원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과에 온 문과생'.

강동원에겐 대학 시절이 썩 유쾌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진 않다. 연예계 데뷔도 용돈 벌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다. 대학교 때 1주일에 용돈이 5만원이라 몇 달 진짜 아껴서 옷 한 벌 사는 처지였다. 친구들이 프로필 사진을 찍어 모델 에이전시에 보내보자고 하긴 했는데 연기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대학 생활 재미도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에 남녀공학을 다녔더니 대학에 와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기계과에 입학해서 기계를 만질 줄 알았는데 온갖 수학과 역학만 하다 보니 심심풀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저도 예전에 집안형편이 안 좋을 때,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봤지만 힘들지는 않았어요. 어떤 일을 해 봤냐고요?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고, 가방 나르고.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해봤죠.” #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강동원은 대학교 1학년인 1999년 # 지하철에서 모델 제안을 받아 모델계에 입문하였는데 당시 대부분의 남자 모델이 ‘남성적’의 상징이라면 강동원을 계기로 완벽하게 ‘예쁜/여자보다 마른/중성적인’ 트렌드로 바뀌었다. 한국 모델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섰고 프라다 런웨이에도 초청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때 이미 배우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2002 GQ 대한민국을 뒤흔든 18인' 중 설경구, 거스 히딩크 등과 함께 선정된 유일한 남자 모델이자, 일본 언더커버, 넘버나인같은 당시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그가 원하는 옷이라면 뭐든지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버버리의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뮤즈. 속옷 모델도 했다.#

하지만 자신은 모델보다는 배우에 뜻을 품어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하게 된다. 훗날 다시 모델에 복귀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모델계에 미련은 조금 있지만, 모델 시절 연예인들의 쇼 출연으로 신인 모델들이 제약을 받는 일이 많아 자신은 절대 캣워킹을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아무래도 이건 자신이 경험한 일이기 때문인 듯하다.

 

강동원 배우 활동

본인의 연기 겸 드라마 데뷔작은 2003년 3월부터 방영한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다음으로는 2003년 7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1%의 어떤 것》으로 싸가지 없으면서도 잔정 있는 꽃미남 재벌 2세로 출연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2004년 1월에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최희철 역을 맡았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목소리와 김하늘과 치고받는 억척스러운 억양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4년 7월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에서 정태성 역을 맡았다.[] 여기서 제대로 꽃미남 이미지로 꽂혀 강동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우산 들어주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으로 남았으며 이후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한다. 강동원 본인은 우스갯소리로 이 광경을 극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못해 아쉽다고 언급했다. 본인은 이 당시, 신인으로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에 '이 영화에서 얻은 인기가 얼마나 갈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부담이 되는 동시에 배우로서 자극이 되었다고 밝혔다.

2004년 8월에는 SBS 드라마 《매직》에서 차강재 역을 맡았다. 이는 마지막 드라마 출연작으로, 강동원은 열악한 드라마 현장이 본인이 드라마를 하지 않는 이유라고 밝혔다.

2005년 9월에 개봉한 사극 영화 《형사 DUELIST》에서 슬픈 눈 역을 맡았다. 본인도 상당히 애착을 가진 작품 중 하나이지만 생각보다 흥행이 많이 되지 않아 상심이 컸던 듯. 흥행은 잘 되지 않았지만 청룡영화상 조명상, 미술상과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10대영화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강동원이 시상식에서 꽤나 기뻐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형사의 칼싸움 신이 오마쥬되었다. 2015년 10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다. 본인은 훗날 이 영화를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말한다.

2006년 9월에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 정윤수 역을 맡았다.

2007년 2월에 개봉한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 목소리 역을 맡았다.

2007년 10월에 개봉한 《M》에서는 한민우 역을 맡았다.

2009년 12월에 개봉한 《전우치》에서는 도사 전우치 역을 맡았다.[]

2010년 2월에 개봉한 《의형제》에서는 북한 간첩 송지원 역을 맡았다. 송강호와 훌륭한 케미를 형성하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후 강동원은 김윤석, 황정민과 작품 내에서 훌륭한 케미를 이뤄 남남 케미의 끝판왕으로 군림한다.[]

2010년 11월에 개봉한 《초능력자》에서는 초능력자(초인) 역을 맡았다.

2010년 11월 18일 사회복무요원 이행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다.[]

2010년 《러브 포 세일》에서 제이 역을 맡았다.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로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이 연출했다.[] 이후 도쿄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으나 한국 개봉은 하지 않았다.

2013년 김지운의 단편 영화 《더 엑스》에서 X 역을 맡았다.

2014년 7월에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조윤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악역 연기와 한복 자태, 검술 등이 특히나 호평받았다.

2014년 9월에 개봉한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선천성 조로증을 앓는 아이의 철부지 아빠 한대수 역을 맡았다.

2015년 11월에 개봉한 《검은 사제들》에서 최준호 역을 맡았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소재의 오컬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544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2016년 2월에 개봉한 《검사외전》에서 한치원 역을 맡았다. 약 97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크게 흥행하여 황정민과 함께 서로의 티켓 파워를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2016년 11월에 개봉한 《가려진 시간》에서 실종되었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 돌아온 소년 여성민 역을 맡았다. 흥행엔 실패했지만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과 동시에 흔치 않은 소재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2016년 12월에 개봉한 《마스터》에서 김재명 역을 맡았다.

2017년 12월에 개봉한 《1987》에 잘생긴 남학생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팜플렛이나 CM 등에 등장 관련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에 상영관마다 강동원이 등장하는 씬에서 웅성이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강동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전,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감수하고 1987 제작진에게 제일 먼저 달려왔다고 이한열 기념사업회에서 밝혔다. 저예산 영화로 제작될 뻔 한 1987은 제일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 강동원 덕분에 투자자가 모여 지금의 규모로 제작되었고, 강동원이 맡은 이한열의 기념사업회에서는 강동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CGV 용산에서 당시 대통령 문재인과 영부인 김정숙이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무대인사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훔쳤다. # 다른 무대인사 진행 도중에도 우는 관객을 보며 자신도 같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2018년 2월에 개봉한 《골든슬럼버》에서 평범한 택배기사 김건우 역을 맡았다.[]

《쓰나미 LA》에서 보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서퍼로 출연할 예정이다. 배급사 측은 영화 속에서 서핑하는 모습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정의로운 시민 역할로 스펙터클한 액션과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며 전부 영어 대사로 연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이먼 웨스트가 연출을 맡았으나, 스콧 만으로 바뀐 뒤 다시 닉 카사베츠[] 감독으로 교체된 듯 하다.[] 미국 LA 역사상 가장 강력한 쓰나미가 도시를 강타한다는 소재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영국과 멕시코에서 번갈아가며 촬영하며 유럽 로케는 루마니아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2018년 4월에 크랭크인하고 2019년 북미 개봉 예정이었지만 일정 문제로 제작이 지연되었다. 결국 2022년 7월 13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쓰나미 LA》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2020년 7월에 개봉한 《반도》에서 초토화된 땅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는 군인 출신 한정석 역을 맡았다. 영화 부산행의 속편으로, 부산행의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난 뒤 국가 기능이 멈추고 재난으로 폐허가 된 반도에서 탈출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사투를 그렸다. 부산행, 서울역으로 세계관을 이어온 연상호가 연출을 맡았다. 2019년 6월 24일 크랭크인 & 2019년 10월 31일 크랭크업. 코로나로 인해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흥행에는 성공했다.

2022년 6월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에서 베이비박스 운영 단체의 비정규직 직원 동수 역을 맡았다. 2021년 4월 14일 서울과 부산 일대에서 크랭크인했으며, 6월 22일 크랭크업했다. 2022년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 최초 공개했는데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요섭의 영화 《엑시던트》에 영일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동명의 홍콩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22년 2월 15일 크랭크업했다.

김성식[]의 연출 데뷔작 《빙의》에 천 박사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22년 9월 14일 크랭크인하여 현재 촬영 중이다.

 

강동원 평가

전형적인 배우의 루트를 거치지 않았고 데뷔 초기에 보여준 다소 어색한 연기로 인해 배우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였으나 배우로서의 목적 의식을 갖고 묵묵히 노력한 덕분에[32] 이제는 대중들에게 연기력 또한 인정받았다. 특히 꾸준한 작품 활동이 큰 인정을 받는다. 일부 인기 배우들이 신비주의로 인해 대박 영화 한 두 편 찍고 나면 몇 년씩 쉬면서 광고만 찍는 반면[], 강동원의 경우 매년 한두 편 꾸준히 영화를 찍고 다양한 배역을 맡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기에 그런 부분에서 평가가 높다. 추가로, 그는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많이 찍기 위해 광고 촬영은 줄이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광고로 인한 수입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기할 때.[]

필모그래피를 보면 출연작 속 캐릭터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본인은 배역이 겹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맡은 배역들에 대해서 다른 배우가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캐릭터를 본인의 스타일대로 개성있게 살려내며 표정 연기 또한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액션 연기 분야에서 칭찬받은 적이 많다.[] 본인도 액션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드러낸다.[] 다만 그의 작품을 본 대중들의 반응이 연기보다는 외모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씁쓸한 사실 역시 존재한다. 연기를 잘 하지만 외모 때문에 연기가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은 대표적인 배우이다. 본인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다.[]

영화계에서의 입지와 타율이 괜찮은 필모그래피 및 스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 경력은 빈약한 편이다.[] 데뷔 초에 신인상과 인기상을 여러 개 받은 이후 2010년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의형제》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본인은 상 받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 또한, 아직 1,000만 관객을 모은 적이 없지만 강동원은 오롯이 혼자서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 배우로 평가받는다. 2016년 CGV리서치센터가 관객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관객들이 믿고 영화를 보게 만드는 배우 2위(28.2%)를 차지했다. 하지만 본인은 천만 배우 타이틀에 대해서도 아쉬운 것이 없고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티켓 파워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는데 다른 남자 배우와 투톱으로 출연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는 반면, 강동원이 원톱을 맡은 영화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 매우 상반되는 결과를 낳는다. 원톱으로 성공한 영화는 전우치 정도 뿐이고 가려진 시간, 골든 슬럼버, 인랑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를 맛봤다. # 반면 남자 선배 배우와 투톱을 맡은 의형제,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 이외의 흥행작들도 마스터는 쓰리톱, 1987은 특별출연으로 비중이 많지 않다.

연기력도 연기로 인정받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배우 경력에 비해 부족하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캐릭터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은 캐릭터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난다. 거기에 사투리 억양을 아직도 못 고치는 것 또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요소다. 결국 원톱으로서 흥행시키지 못하는 것 또한 이런 연기력 문제와 결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위에 문단에서 연기력이 외모에 가려진다고 주장하는데 강동원 본인도 외모보다 자신의 연기력 부족을 탓한다. #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연기 욕심이 많은 것과 연기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향후 5년이 자신의 연기 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고 YG로 이적한 이유가 '열악한 영화 환경에 대한 싫증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 아시아 시장에 대한 겨냥'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강동원 결론

결론적으로 강동원은 한국 연예계의 미래가 밝은 재능 있는 배우다. 그는 그의 공연에서 엄청난 범위를 보여주었고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기와 사회공헌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배우 지망생들의 롤모델이자 한국 대중문화의 사랑받는 인물이 됐다.